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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가진 모든 것: Beyond human evil and sorrow
    인생 이야기 2025. 10. 12. 22:49



     
     
     
    나는 지쳐있었다. 어린시절 자아의식이 생긴 이후로 계속해서 내 어깨와 머리 위에 먼지처럼 조금씩 쌓여가던 것들이 대학을 거치고 사회 생활을 거치면서 어느 이상의 무게에 다다르자 갑자기 무섭게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세상 모두가 쫓는 반짝이는 것들은 막상 손에 쥐면 왠일인지 멀리서 바라볼 때의 반짝임을 잃었고, 반짝임을 잃은 그것들은 금세 마치 내 몸의 일부처럼 되어버려 어떤 계기로든 하나씩 떨어져 나갈 때마다 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을 몰고왔다. 그리고 그 불만족이나 고통은 반짝이는 것들에 대한 욕망만을 더 각인시킬 뿐이었다.  
     
    그것이 이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었다. 거짓 반짝임으로 유혹하는 것들을 목숨 걸고 쫓다가 운이 좋으면(?) 그것을 얻어 존재의 일부로 만든다. 그때부터 그 반짝이지도 않는 것은 신체의 양분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마치 먹여살려야 하는 식구처럼 되어버린다. 그 순간부터는 몸에 붙은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가능하면 조금 더 덕지덕지 몸에 붙이기 위해서 살아가게 된다. 더이상 내 의지로 사는지 내 몸에 붙은 기생충들의 의지로 사는지 모를 지경이 된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라고 착각지만.) 결국 돈, 커리어, 체면, 자부심, 성욕, 명예욕, 식욕, 물욕 등의 기생충들을 먹여살리느라 인생을 다 쓰고 막상 자기 자신은 미처 성장하기도 전에 늙어버린 기괴한 조로증 걸린 동물같은 모습을 하고 죽음을 맞는다.
     
    그렇게 이상과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는 현실에 좌절하고, 크게 작게 서로를 끊임없이 배신하고 결국엔 어쩔수 없이 자기 자신마저 배신하고 마는 인간의 본성에 염증을 느꼈다. 스스로를 돋보이게 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셀 수 없는 거짓말과 과장과 축소를 하고, 그렇게 '굴절된 여러개의 현실'이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세상에서 진실이란 몇 겹을 들춰내도 발견할 수 없는 무엇이 된다. 대체 이 세상에서 누구의 진실을 어디서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인가. 결혼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서로 상대방의 진실이나 제대로 알고 가족의 인연을 맺는 것일까. 어쩌면 오늘날 이혼률이 하늘을 찌르는 건 사람들이 예전보다 더 많은 쓸데없는 것들을 몸에 지니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굴절된 현실을 만들어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단 결혼을 한 후 우연한 기회에 굴절된 현실이 한 겹 벗겨져서 뜻밖의 진실을 발견하게 되면, '나는 속았다', 라고 느껴서 이혼을 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전체적으로 저속하고 위선적이었다. 사람들은 자기밖에 모르는, 그래서 사악한, 하지만 안 그런척 해야 해서 슬픈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야'라고 해도 그건 그 사람을 속속들이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일 뿐이었다. 그래도 굳이 나누자면 사악하고 슬픈 인간의 본성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은 다시 자신이 가진 인간의 본성과 싸우는 사람과 싸우지 않고 타협하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결국 기괴한 동물의 모습으로 최후를 맞이하지 않는 사람은 '싸우는 사람'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안에 내재된 사악하고 슬픈 인간의 본성과 싸우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거짓말하고, 음란하고, 욕심내는 인간의 본성과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 번째는 축소 또는 과장해서 말하거나 거짓을 섞어 말하지 않기다. 생각보다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러자면 자존심과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스스로가 가장 추악하기로 유명한 히틀러나 유영철, 조두순 같은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는 존재이며, 상황만 맞아 떨어지면 언제고 그런 존재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 자신이 '선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자존심과 욕심을 내려놓을 수 없다.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돋보이고 싶은 욕망과 이득을 얻고 싶은 욕망은 그들의 생각을 굴절시키고 혀를 굴절시킨다. 굴절된 혀에서 나간 굴절된 말은 굴절된 현실을 형성하고, 굴절된 현실은 모여서 혼란과 폭력과 어둠과 죽음을 야기한다. 히틀러도 아마 스스로에게 하는 작은 거짓말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마치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의 비극이 나폴레옹이라는 돼지 한 마리의 거짓말에서 시작되었듯이. 
     
    두 번째는 혼외 성관계 하지 않기. 아직 미혼이므로 약혼자가 생기거나 적어도 결혼을 결심하기 전까지는 아무하고도 성관계를 갖지 않기로 정했다. 미래의 와이프에게 속속들이 자세한 사정까지 공개할 수 없는 일은 애초에 만들지 않기로 한 것이다. 속속들이 말 할 수 없다는 건 축소나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말이고 그건 언제나 악하고 슬픈 일들의 씨앗이 된다. 만약 결혼을 못 한다면 평생 성관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당연히 인터넷으로 포르노를 본다던가 하는 일도 금지다. 머릿속으로 하는 혼외정사를 반복하다보면 결국 한 번은 현실에서 혼외정사를 하는 방향으로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상상은 욕망을 부채질하고, 욕망은 말을 형성하고, 말은 행동으로 이어진다. 행동을 끊어내는 일은 생각을 끊어내는 일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생각을 끊어내는 방법은 머릿속을 다른 '좋은 것'들로 채우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요즘 유행하는 명상에 회의적이다. 머릿속을 비우는 일은 아무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머리는 가만둬도 무의식중에 어떤 것으로든 차게 마련이라서 좋은 것으로 미리 최대한 가득 채워야 나쁜 것들이 들어올 틈이 없어진다.)
     
    세 번째는 세상의 반짝이는 것들을 쫓지 않기이다. 손에 넣는 순간 멀리서 보이던 그 반짝임은 점점 흐릿해지고 신체의 일부처럼 되어서 떼어놓기만 힘들어지는 것들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바보같은 짓을 더이상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대신에 순수하고 숭고한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인간의 사악하고 슬픈 본성은 결국 어떻게든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알리고 싶었다. 두 발은 현실에 두되 지고한 목표를 올려다보고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작은 물결을 만들고 퍼져나가 누군가에게 닿음으로써 세상은 조금 나은 곳이 된다. 세상이 나아지는 방법은 그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아지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심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던 어느 날, 지금으로부터 2년쯤 전인 2019년 6월의 어느 날, 나는 죽음을 경험했다. 물론 이렇게 앉아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육신의 죽음은 아니었던 것이 확실하고, 에고(자아)의 죽음과 새로운 에고의 탄생을 경험했다고 하는 편이 알맞은 설명일 것이다. 6월 몇 일이라고 콕 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대략 그 때쯤 그런 센세이션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몸부림의 게이지 같은 것이 어느 임계점을 지났었는지, 아니면 그것과는 상관없이 어떤 신비한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인지,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머릿속의 생각들을 거의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지난 2년간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은 소기의 성공을 거두었다. 조금씩 모자라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렇다. 그리고 그 원동력이 되어준 건 나의 남다른 의지력이나 천재적인 두뇌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건 '신이 나와 함께한다'라는 믿음이었다.
     
    신이 나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머릿속 생각들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다, 라고 진심으로 믿으면 타고난 인간의 본성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진심으로 믿는다'라는 건 마치 '냉장고 안에는 달걀이 있다'라는 수준의 자명한 믿음을 말한다. 신의 존재를 자명하게 믿을 때 신의 힘으로 인간의 본성을 이긴다,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의 유전자에 깊숙히 새겨진 사악함과 슬픔에의 치우침을 이겨내려면 인간의 의지로 대뇌에 내리는 명령으로는 역부족이다. 인간 안에 내재된 힘으로는 아무리 참선과 수행을 해도 이길 수 없으며, 창조주에 대한 '믿음'이 외부적인 힘의 원천으로서 작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보더라도 '신이 인간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는 아이디어는 합리적이다. 이미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에 장치를 부착해서 머릿속으로 생각하거나 꿈꾸는 내용을 이미지로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아직 그 선명도는 부족하지만 시간이 좀더 흐르면 깨끗한 화질로 누군가의 머릿속 상상을 녹화하는 일도 가능할 것이라고 한다. 인간도 대충 가능한 일을 신이 못 한다고 하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논리가 될 것이다.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논쟁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가령 졸피뎀 두 알로도 못 고치던 불면증을 신에 대한 믿음으로 단번에 고쳤다고 하면 신은 적어도 졸피뎀 두 알 보다는 실험적으로 측정가능하게 실재하는 존재가 된다.)

    사실 내가 정한 세 가지 결심은 결국 하나의 원칙으로 수렴한다. 언제나 신이 지켜본다고 진심으로 믿으면서 모든 생각과 언행을 한다, 이다. 그렇게 수렴되어 일반화된 원칙으로 발전한 결심은 다시 나의 매시매분매초에 적용되었고, 그렇게 나는 2019년 6월 이후로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완료형이라기보다는 진행형에 더 가깝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저히 끊어낼 수 없는' 욕망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꿈꾸는, 욕망하는 어떤 것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굴절된 현실을 많이도 머리위에 이고 살고 있을 것이다. 그게 썩 편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원하는 것을 더 많이 더 쉽게 얻고, 때로는 그저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작은 과장과 축소와 거짓말들을 일삼으면서, 그렇게 점점 몸의 일부가 되어가는 기생충들을 먹여살리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기생충이 될 반짝이는 무언가를 쫓으면서. 그래서 지난 1년 365일 동안의 모든 생각과 언행을 (부부관계, 목욕, 생리현상 정도만 제외하고) 동영상으로 페이스북에 공개한다던가 하면 아마 직업, 친구, 가족 등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고,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비밀이 폭로되면 끝장나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라고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그런 사계절을 살고, 다시 살고, 다시 살아가면서 끝내 모든 가능성이 소멸하고 욕망만 남은 기괴한 동물의 상태로 생이 끝나는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두에게 말하자면, 당신에게도 아직 선택의 기회는 있다. 그리고 단언컨대 그건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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