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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의 평범성
    인생 이야기 2022. 12. 9. 20:07
     
     
     

    우리는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 대다수는 선량하며 소수의 나쁜 사람들이 있다고 가정하고 살아간다. 또는 나쁜 사람도 많지만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가정하기도 한다. 정말 그런 걸까. 이 세상에 ‘좋은 사람’이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나도 그 좋은 사람 중 하나인 걸까. 객관적으로 어떨까. 아마도 오랜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지만 누구도 명확한 답을 알 수 없었던 물음들. 인류 문명이 태동한 이후 처음으로 그 해답이 우리 눈앞에 펼쳐졌다. 코로나 백신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에 의해서.

     

    전화 통화가 잘 안 된다는 질병청과 제때 통화에 성공해서 부검까지 마친 백신 사망자만 1,400여명. 젊은이들 수백 명과 노인 천여 명이 죽어갔다. 아무런 기저질환도 없이 건강하게 생활하던 2030 세대도 많았고, 심지어 청소년들도 있었다. 마치 세월호처럼 수많은 무고한 생명이 갑자기 죽어버렸다.

     

     

    세월호 사고 당시 모든 국민이 애도했다. 전국민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그래서 다들 착한 사람들이구나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좋은 사람들과 나쁜 사람들이 모세의 홍해처럼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백신을 맞고 멀쩡하던 자녀가 죽으면 그 가족은 백신을 맞지 않는다. 적어도 그 부모는 백신 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밀 것이다. 백신패스가 없어서 받는 불이익이 아무리 크더라도 맞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사람이 내 자식이 아니라 옆동네 김씨네 딸 김지영양이라면 어떨까.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내 자식이 죽으면 백신은 비극이고 철천지 원수가 되지만 옆동네 김씨네 딸 김지영양이 죽으면 여전히 인류의 유일한 구원자다. 아니면 별로 탐탁치는 않지만 계속 돈을 벌고 쓰기 위해 맞아야만 하는 일종의 통행증이다. 그러다가 내 가족이 죽어야 그제서야 비극이 된다. 운이 좋아서 계속해서 부작용이 없으면 계속 통행증으로 남는다. 그 사이에 무고한 사람들이 더 죽어나가지만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라서 별로 신경쓰고 싶지는 않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의 죽음을 못 본 체 한다.

     

     

    그렇게 접종률은 계속해서 높아져서 90%에 가까워졌다. 수만명이 죽거나 중증 부작용에 시달리는 한편 수천만은 여전히 낄낄거리며 백신패스를 자랑스럽게 내밀고 다닌다. 그 수천만에 의해 백신은 정당성과 살인 면허를 얻었다. 마치 <오징어게임>에서 주최측이 참가자들 과반 이상의 참가결정에 의해 살인면허를 얻었듯이. 백신을 맞는 사람은 백신패스를 받는 대가로 제약회사와 정부와 언론에게 살인패스를 제공한 것이다.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살인패스를 제공하지 않으리라고 저항하는 사람은 전 국민의 10%도 되지 않는다. 사실 청소년을 빼면 1% 정도다.

     

    고작 백신패스 받겠다고 살인패스에 도장 찍은 사람들이 억울한 한 소녀의 죽음을 파헤치는 영화라든가 납치된 딸을 세상끝까지 쫓아가서 구하는 내용의 영화는 참 재밌게도 본다.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 등의 슈퍼히어로가 사람 목숨을 구하는 영화도 재미있게 본다. 나름 인류애 있는 좋은 남편, 아내, 아들, 딸, 친구인 척 한다. 살인패스에 도장 찍어준 주제에 스스로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중성과 위선에 구역질이 난다.

     

    그럼에도 공개적으로는 남을 살리기 위해 지하철 철로에 뛰어든다든지 한강물에 뛰어든 사람을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것을 보면 남을 위해 희생을 하는 것이 고귀하고 선한, 바람직한 행동이라는 건 다들 아나보다.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목숨을 던져 남을 구하기는 커녕 고작 월급 몇 푼이나 외식, 해외여행 따위가 급해서 수많은 무고한 죽음을 보고도 못 본 체 한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고 변명한다. 그래놓고도 자기 자신은 악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구역질을 넘어 토악질이 난다.

     

    구역질나는 영혼을 가진 사악한 사람들이 99%인 세상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래서 많은 미스터리가 풀린다. 왜 항상 가장 잔인하고 이중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해 왔는지, 왜 빈익빈부익부는 심해져만 가고 왜 충분한 음식이 있어도 한쪽에서 사람들이 굶어죽는지 모든 의문이 풀렸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전부 사악하기 때문에 그중 제일 센 놈이 지배해왔던 것이다. 가장 잔인하면서 가장 위선을 잘 떠는 야누스일수록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들 똑같이 악하면서 겉으로만 좋은 사람인 척 해왔기 때문에 진짜로 좋은 사람은 힘을 갖기 전에 초장부터 알아보고 다같이 합심해서 제거해왔던 것이다. 그 '좋은 사람인 척'을 가족친지, 지인끼리 받아줌으로써 품앗이의 형태로 집단 자기기만질을 일삼아 왔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너 좋은 사람이라고 해줄테니 너도 나 좋은 사람이라고 해줘, 하는 암묵적인 감정의 자위행위 품앗이. 그래서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다는 말도 생겨났던 것이다. 아는 사람들끼리는 왠만하면 '좋은 사람 품앗이'를 하니까. 그러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어려운 이웃을 돕기는 커녕 조금의 손해도 보기 싫어서 품앗이하던 지인의 등에다가 칼을 꽂아왔던 게 인류의 대략적인 역사인 것이다. 인류의 역사, 사회학적 비밀이 백신에 의해 풀렸다. 성경에서 왜 소수의 사람만 천국에 가고 대다수는 지옥불에서 영원히 타는 것이 공의롭다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도 풀렸다. 대부분 다 악하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사악한 사람과 좋은 사람을 갈라치고 싶지는 않다. 애초에 우리 모두의 디폴트값은 사악한 자이기 때문이다. 일부가 처절한 뉘우침으로 그 상태를 겨우 벗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하늘과 땅보다 크다. 그러니 그저 소수라도 자기 자신의 모습을 깊게 들여다보고 스스로에게 구역질을 한 뒤 깨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2년 전에 그랬다. 지나온 삶이 전부 구토유발자의 그것이더라. 숨이 붙어있는 한은 돌이킬 기회가 있다. 돌이키는 과정에서 다 내려놓아야 하겠지만. 사악한 대다수 소시민으로 죽을 것인가 다 내려놓고 소수의 좋은 사람으로 죽을 것인가. 참 쉬운 선택이다. 어차피 죽을 때는 누구나 다 내려놓고 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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