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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길 바라셨을까?
    성경 이야기 2024. 9. 19. 13:39

     

     
     

    흔한 기독교적 세계관은 '에덴으로의 귀환'을 지향한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원죄가 인류와 세상을 타락시켰고, 이제 예수님이 대신해서 모든 죄를 지고 죽었다 부활하셨으니 그것만 믿으면 곧 다시 에덴동산 같은 곳에서 타락하기 전의 아담과 이브처럼 마냥 행복하게 영원히 살 줄 안다. 하지만 그건 성경적인 세계관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는 에덴으로의 귀환이 아니라 에덴에서 시작하여 새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의 상태는 영원히 살 수 있는 몸과 뛰어난 기억력의 두뇌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 '좋고 나쁨'을 모르는 그야말로 아이 같은 상태였다. 뱀에게 하는 이브의 말이나 죄를 지은 후 신께 대답하는 아담의 말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3:2 여자가 뱀에게 이르되, 우리가 동산의 나무들의 열매는 먹어도 되나  3:3 동산의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에 관하여는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그것을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염려하노라, 하셨느니라, 하매  3: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3: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하니라.  3:6 여자가 보니 그 나무가 먹기에 좋고 눈으로 보기에 아름다우며 사람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나무이므로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고 자기와 함께한 자기 남편에게도 주매 그가 먹으니라. 
     

    우선 신께서 하신 말씀조차 그대로 전하지 못하는 걸 볼 수 있고 (그분은 만지지도 말라고 하신 적은 없으므로) 뱀이 신을 반대하려 절대로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유혹하자 홀랑 넘어가버리는 모습은 판단력이 굉장히 부족해 보인다.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전지전능한 분이 먹으면 죽는다고 확언하신 걸 어찌 저리도 쉽게 죽음을 무릅쓰고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아담과 이브는 선악, 즉 좋고(good) 나쁨(bad)을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아마도 선악과 나무를 제외하면 에덴동산에는 나쁜 것은 하나도 없었고, 그래서 온 세상이 좋고 아름다운 것들만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 속에서 행복한 아이처럼 죽음도, 위험도, 썩음도, 아픔도 모르고 살던 아담과 이브였기에 신이 만들어 준 좋기만 한 곳, 에덴동산 안에서는 어쩌면 좋고 나쁨을 판단할 필요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선악과를 먹지 않는 한 말이다. 하지만 신께서는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만 영원히 머물며 그 상태로 살기를 원하시진 않으셨던 것 같다. 만약 그랬다면 전지전능한 힘으로 애초에 뱀이 에덴동산에 숨어들지 못하게 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왜 선악과 나무를 한가운데 떡하니 두시고 뱀도 들어가도록 놔두셨을까? 실수가 없으신 분인데, 실수가 아니라면 고의인데 말이다.

     

    솔로몬과 신의 대화에서 우리는 그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열왕기상 3장이다.

     
    3:5 기브온에서 밤에 주께서 솔로몬에게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구하라, 하시니  3:6 솔로몬이 아뢰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진리와 의와 올바른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걸은 대로 주께서 그에게 큰 긍휼을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해 이 큰 친절을 예비하시고 이 날과 같이 그의 왕좌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3:7 이제,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께서 주의 종으로 하여금 내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나는 작은 아이요, 나가거나 들어올 줄을 알지 못하오며  3:8 주의 종이 주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 한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므로 너무 많아 셀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사오니  3:9 그러므로 주의 백성을 재판하도록 주의 종에게 깨닫는 마음을 주사 내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같이 큰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니라.  3: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주께서 그 말을 기쁘게 여기시니라.  3:11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였으며 너를 위해 장수하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너를 위해 재물도 구하지 아니하며 네 원수들의 생명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위해 재판을 분별하기 위한 명철을 구하였은즉  3:12 보라, 내가 네 말대로 행하였느니라. 보라, 내가 네게 지혜롭고 깨닫는 마음을 주었은즉 너 이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 이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3:13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것 즉 재물과 명예도 내가 네게 주었은즉 네 평생토록 왕들 중에서 너와 같은 자가 없으리라.  3:14 또 네가 만일 네 아버지 다윗이 걸은 것 같이 내 길들로 걸으며 내 법규와 내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네 날들을 길게 하리라, 하시니라. 

    솔로몬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게 하옵소서'하고 요청하자 하나님이 기뻐하셨다고 되어 있다. 장수하는 것도 아니고 재물도 아니고 원수의 죽음도 아니고 재판을 분별하기 위한, 판단하기 위한 명철을 구하였으므로 선악을 아는 능력은 물론 지혜와 재물과 명예까지 보너스로 푸짐하게 주셨다.

     

    여기서는 인간이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잘 분별하기를 원하시는 신께서 아담과 이브에게만은 선악을 분별하기를 사형까지 내릴 정도로 원치 않으셨다? 두 이야기가 모두 참이 되는 맥락이 숨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신께서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난 후 '저들이 우리(신)처럼 선악을 알게 되었으니'라고 하셨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까 흙으로 만든 인간이 신처럼 되는 1단계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럼 그걸 축하해주지는 못할 망정 왜 쫓아내고 죽음과 일하는 고통과 출산의 고통을 주셨을까?

     

    쫓아낸 이유는 일단 에덴동산에는 '나쁜 것'이 없어서 판단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온갖 고통을 내리신 이유는 고통이 나쁜 것(악)이기 때문에 에덴동산에는 없던 판단할 거리를 배우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가시도 생기고 썩음(곰팡이병)도 생겨났다. 만물의 세포속에 벌레(미토콘드리아)도 들어갔다. 그때부터 인간은 주어진 유한한 인생 동안 선악을 분별하고 잘 행해서 악에 저항하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야만 하게 되었다. 흙으로 만든 인간이 신처럼 되기 위한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무술을 배우기 위해 고수를 찾아 처음 제자가 되면 바로 본격적이고 멋진 무술을 가르쳐주지 않고 청소, 물길어오기 등만 시키는 모습을 클리셰처럼 볼 수 있는데 이때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는 스승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반항하는 장면이 꼭 등장한다. 하지만 스승은 제자의 고통스러운 성토 속에서도 오히려 청소를 제대로 못하면 체벌을 가하거나 쫓아내 버린다. 그렇게 영문도 모르고 온갖 청소와 집안일, 심부름을 오랫동안 하고 나서야 제자는 스승이 시킨 모든 잡스러운 일 속에 깊은 뜻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체력, 균형감각, 스피드, 반사신경, 인내력, 지구력, 순발력 등 비로소 무림의 고수가 되기 위한 준비가 어느 순간 갖추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스승의 깊은 뜻을 드디어 헤아리고 눈물을 글썽인다. 마치 저주나 벌처럼만 느껴지던 지난 날들이 모두 자신을 무림고수로 만들기 위한 스승의 사랑이었음을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판단력이 없어서 뱀의 꼬임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도 선악과와 뱀을 에덴동산 한가운데 떡하니 두신 이유.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 선언하시고도 바로 죽이지 않고 에덴동산 밖으로 나가 살도록 하신 이유. 죽음과 썩음과 온갖 고통을 도입하신 이유. 뱀이 따라다니며 유혹하도록 그냥 두신 이유. 모든 것들이 흙으로 만들어진 더러운 물건 같은 우리를 빛으로 가득한 그 어떤 슈퍼히어로보다 더 신 같은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만들기 위한 그분의 사랑임을 나는 느낀다.

     

    솔로몬의 이야기를 하나 더 보자.

     

    역대하 1장이다.

     
    1:6 솔로몬이 거기로 즉 주 앞에 있던, 회중의 성막에 있던 놋 제단으로 올라가 그 위에 번제 헌물 천 개를 드렸더라.   1:7 그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구하라, 하시니  1:8 솔로몬이 하나님께 아뢰되, 주께서 전에 내 아버지 다윗에게 큰 긍휼을 베푸시고 나로 하여금 그를 대신하여 통치하게 하셨사온즉  1:9 오 주 하나님이여, 원하건대 내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제 굳건히 하옵소서. 주께서 나를 땅의 티끌같이 많은 백성을 다스릴 왕으로 삼으셨사오니  1:10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내가 이 백성 앞에서 나가고 들어오게 하시옵소서. 이같이 큰 주의 이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하매  1:11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것이 네 마음에 있어 네가 부나 재물이나 존귀나 네 원수들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하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를 왕으로 삼아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너 자신을 위해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므로  1:12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었으며 또 부와 재물과 존귀도 주리니 너 이전의 왕들 가운데 아무도 이와 같은 것을 소유하지 아니하였고 너 이후에도 아무도 이와 같은 것을 소유하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번에는 선악 분별 능력이 아니라 '지혜와 지식'을 요청하는 솔로몬. 신께서 기뻐하셨다는 말은 따로 없지만 요청한 지혜와 지식은 물론 기존보다 더 크게 재물과 존귀까지 내려주시는 모습을 볼 때 기꺼워 하신 것으로 보인다.

     

    처음엔 선악 분별 능력(선악과), 그리고 두번째로는 '지혜와 지식'. 둘이 서로 다른 개념이고 둘다 필요하다는 맥락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 사건 이후로 태어나는 우리 인간들은 선악 분별 능력은 자연스럽게 가지고 태어난다. 일정 나이에 이르면 교육수준과 상관없이 부모에게 잘 해야 한다는 것, 남에게 피해주지 말아야 한다는 것, 살인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간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등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를 자연히 알게 된다.

     

    그렇다면 지혜와 지식은 무엇이 좋고 무엇이 나쁜지에 대한 분별 능력을 어떻게 하면 더 발달시킬 수 있으며 실제 인생에서 그 분별능력을 어떻게 사용하면서 어떤 행동들을 하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능력이라고 볼 수 있다. 지혜는 그분을 두려워함으로부터 나온다는 것만 보아도 인간은 누구나 무엇이 좋고 나쁜지는 알지만 그걸 실제로 자기 삶에 적용하는 능력(지혜)는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주어지는 별개의 능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그래서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뻔히 아는데도 온갖 헛된 지식과 그때그때의 욕심과 기분에 기반한 자기 합리화로 결국 악한 일을 행한다. 지혜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솔로몬은 왜 말년에 탈선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질 수 있다. 선악 분별 능력과 지혜와 지식으로도 안 되는 걸까?

     

    그렇다. 아무리 선악을 분별하고 지혜와 지식이 많아도 '자기부인 능력'이 없으면 결국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자기부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모욕감을 느끼지 않는다. 기분에 따라 인생을 살지도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러 가는, 죽고 싶어 하는 십자가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그것은 희생이며 가장 큰 사랑이다. 친구를 위해 죽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친구라고 했다.

     

    자기부인의 반대말은 그럼 무엇일까?

     

    프라이드(자긍심, 지존심, 자부심, 자존감)이다.

     

    자긍심, 자부심, 자존심, 자존감 모두 스스로를 존중(존경)하여 높이는 마음이다.

     

    자기부인을 하느냐 나에게 무슨 존중받을 거리라도 있다는 높아진 마음을 갖느냐.

     

    높은 마음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자.

     

    역대하 26장이다.

     
     
    26:12 강한 용사들의 아버지들의 우두머리들의 전체 수는 이천육백 명이요,  26:13 그들의 손 밑의 군대가 삼십만 칠천오백 명이더라. 이들이 큰 힘으로 싸우며 왕을 도와 원수를 쳤더라.   26:14 웃시야가 그 온 군대의 도처에서 그들을 위해 방패와 창과 투구와 갑옷과 활과 돌을 던지는 돌팔매 기구들을 예비하였고  26:15 또 예루살렘에서 솜씨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계들을 만들게 하여 망대와 보루 위에 두고 그것들로 화살과 큰 돌을 쏘게 하였더라. 그의 이름이 멀리 퍼졌으니 그가 놀랍게 도움을 받아 마침내 강하게 되었더라.  26:16 그러나 그가 강하게 되매 그의 마음이 높아져서 그가 파멸에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주 자기 하나님께 죄를 짓고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 제단에 분향하려 하였기 때문이더라.  26:17 제사장 아사랴가 주의 제사장들 곧 용맹한 자들 팔십 명을 데리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가  26:18 웃시야 왕을 막으며 그에게 이르되, 웃시야여, 주께 분향하는 일은 왕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거룩히 구분된 아론의 아들 제사장들에게 속하였으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법하였은즉 주 하나님에게서 그 일로 인해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 하니라.  26:19 그때에 웃시야가 화를 내며 분향하려고 손에 향로를 들었는데 그가 제사장들에게 화를 낼 때에 주의 집에서 분향 제단 옆에서 제사장들 앞에서 그의 이마에 나병이 솟으니라.  26:20 수제사장 아사랴와 모든 제사장이 그를 보니, 보라, 왕의 이마에 나병이 있으므로 그들이 그를 거기서 쫓아내고 참으로 주께서 그를 치셨으므로 왕도 속히 나가니라.  26:21 웃시야 왕이 죽는 날까지 나병 환자로 지냈고 나병 환자이므로 외딴 집에 거하였더라. 그가 주의 집으로부터 끊어졌으므로 그의 아들 요담이 왕의 집을 다스리며 그 땅의 백성을 재판하였더라. 

    웃시야는 마치 증명하려는 듯 자기 자신의 힘에 의지했다. 즉, 파워게임을 했다. 사람을 더 모으면 강해지고 잃으면 약해진다는 마음, 여럿이서 공격하면 이긴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모이는 것이 진실보다 중요하다는 페미니스트, 환경운동가, 사회주의자, 주주자본주의자, 그리고 콘스탄틴 기독교인들의 마음이다. 빨간색으로 된 구절은 높아진 마음을 가진 채로 구원받았다며 예수를 찾으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결론이다.

     

    높은 마음의 결론은 바로 곰팡이 엔딩이었다. 벚꽃엔딩. 곰팡이병은 곧 주께서 그를 치셨다는 증거이기에 리얼소금을 열심히 먹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육신에 하정되는 이야기고 진정한 자기부인이 없으면 결국 벌레들과 영원히 불못에서 살게 될 것이다.

     

    높은 마음도 결국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아담과 이브가 높은 마음을 가졌을까? 프라이드에 취해 신과 맞먹으려고 선악과를 먹었다기 보다는 교묘하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뱀의 거짓말에 속았고, 속아서 선악과를 먹으니 마약 먹은 사람처럼 되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자기도 모르게 해버린 쪽이라고 본다. 사실 뱀도 자기는 진실을 말했다고 주장할 것인데 정말로 아담과 이브는 그때 당시 당장 죽지 않았고 눈도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처럼 되었다'며 뱀의 말을 입증해주기까지 하신다. 하지만 결국 온 세상에 죽음이 들어왔고 아담은 죽을 때까지 노예처럼 일해야 했으며 이브는 남편의 지휘 아래 생활하면서 끔찍한 고통으로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그분의 계획하심에 따라 인류 중 일부는 예수님처럼 되므로 뱀이 그때가서 또 한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모르나 인류의 역사 가운데 지옥으로 가게 된 수많은 인간들은 뱀의 책임이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의 기분과 욕망을 위하여 이브를 꼬득였기 때문이다. 신께서는 하극상 일으키는 인성 터진 뱀에게 모든 정보를 주지 않으셨고 그가 천방지축 잘났다고 뽕에 취해 기분대로 까부는 것을 역이용하셨을 뿐이다. 그래서 아무리 악의 무리들이 까불어도, 단기적으로 그들의 목표를 달성해도, 결국은 그분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모든 나쁜 일, 모든 죄의 책임은 악인들이 결국 다 지게 된다. 그것이 천재적인 우리 아버지의 설계다.

     

    따라서 우리는 지혜와 지식을 추구하되 가장 중요한 건 누구로부터의 모욕감도 느끼지 않는, 매일 자기 안의 악한 생각과 상상을 발견하고 사로잡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리는, 이웃을 위해 다 버리고 죽을 생각을 매일 하는 자기부인 능력이라는 걸 매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출처: 스카이트리 매거진 https://www.skytree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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