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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지옥: Hellbound> 감상평 (스포X)문화 이야기 2021. 11. 21. 00:29
<지옥>은 <오징어게임>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오징어게임>의 세계적인 히트로 인해 직접적인 후속작은 아니지만 한국의 유명 감독과 유명 배우가 기용된 대형 작품으로 홍보된 <지옥>에 대한 기대감이 뜨거웠었다. 그리고 어제 11월 19일 공개된 그 작품의 첫번째 시즌에 대한 감상평은 아쉽게도 호평보다는 혹평이 많은 것 같다. '끝까지 보는 것이 지옥같았다'라는 후기도 있었다. 어쨌든 일단 진짜 지옥같다는 평을 이끌어내는 데는 성공한 걸로.
깊은 주제에 대한 얕은 접근
사실 '지옥'이라는 주제는 지구상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개념인만큼 언뜻 대중성 확보가 수월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매우 깊이있는 주제에 해당한다. 과학의 영역 밖이지만 어느정도 양자역학적인 타당성도 갖추어야 하고, 철학의 영역 밖이지만 철학적 타당성도 갖춰야 하며, 초자연적인 영역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계와 유기적인 연관관계를 가져야 한다. 따라서 명확하고 깊이있으면서도 완성도있는 세계관이 드러나줘야만 한다. 하지만 <지옥>에서 그리고 있는 '지옥'은 모든 방면에서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이 가져오는 부조화
지옥에 가서 벌을 받으려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자유의지를 지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가 결정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는 꼴이 되어서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지옥행'을 고지받는 시점과 실제로 죽게 되는 시점 사이의 기간에 대해서 인간의 자유의지가 부정된다는 점을 설명해야만 한다. 작품속의 새진리회는 회개할 것을 외친다. 하지만 일단 지옥행 고지를 받은 사람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없다. 그리고 지옥행 고지를 받은 이후에도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수십년을 더 살아가야만 한다. 지옥행이 확정된 한줄기 희망조차 없는 인생을.
어쩌면 갓난아기가 지옥행을 고지받는 에피소드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자유의지 자체를 통째로 부정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고릴라같이 생긴 저승사자들과 메두사같은 천사가 사실은 창조주가 보내서 온 게 아니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알고보니 모든 것이 악마의 천사 사칭 사기극이었다'라는 설정도 괜찮아보인다.
그런데 극중의 지옥행이 진짜 지옥행이라면 모순이 생긴다. '지옥'이란 '죄'때문에 가는 곳이다. 죄없는 사람이 운이 나빠서 재앙처럼 가게 되는 곳이라면 그건 더이상 지옥이라고 부를 수 없다. 뭔가 다른 이름을 붙여야 대중들이 수긍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우슈비츠나 아오지탄광, 혹은 정치범수용소 같은. 지옥은 원래 단어가 지닌 의미가 명확하고 뿌리가 아주 깊기 때문이다.
지옥이라는 개념과의 의미싸움은 필패의 길
고작 여섯 편짜리 시즌1을 본 것에 불과하기에 아직까지는(?) 작가(연상호 감독)의 의도를 속단하기 어렵지만, 지옥을 만든 신은 폭군이며 공정한 기준에 의해 지옥으로 보내지는 것도 아니다, 라는 관념이 살짝 엿보인다. 스토리가 그 방향으로 흐르면 흔한 영지주의 기독교의 교리가 되어버리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중들의 무의식에 루시퍼를 숭배하는 영지주의 기독교의 교리를 몰래 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말이다.
'지옥이라는 공포에 눌려 행하는 선행이 진짜 선행인가'에 대한 문제제기는 좋았다. 하지만 지나간 과오를 모두 참회하고 완전히 손을 씻은 사람은 공포때문에 선행을 하지 않는다. 더이상 죄를 짓지도, 아무런 비밀도, 그로인한 부귀영화도 간직하지 않고 살아가는 참회한 사람에게는 지옥의 공포가 없다. 그래서 오롯이 기쁜 마음으로 선행을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과거를 참회하지 않은 사람의 경우에는 지금 현재 간직하고 있는 은밀한 죄의 비밀들에 의해 지옥에 갈 것을 염려해 선행을 하게 되므로 그때는 공포에 눌려 하는 선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선행은 선행도 아니고 정의도 아니다.
유아인 분의 새진리교 의장이 소녀의 복수를 하는 장면도 의아함을 자아낸다. 그런 무도한 살인범의 경우에는 당연히 지옥행이 예정되어 있을 것인데 굳이 자력구제를 해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옥이라는 개념 자체가 죄인들이 세상에서 제대로 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정당화되는 면이 있는데 신의 뜻을 좀 안다고 자부하는 새진리교 의장이라는 사람이 스스로를 신처럼 높여 인간의 목숨을 심판하는 장면은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래도 작가는 인생, 종교, 천국, 지옥이라는 주제들에 대해 깊이있는 지식이나 지혜를 지니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스토리가 타당성이 떨어지고 유기적으로 맞물려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어디서 본듯한 클리셰적인 장면들이 연속성도 없이 연속해서 등장한다. 만약 시즌2가 제작된다면 작가는 전작 <부산행>처럼 몬스터 액션과 히어로 스토리에 포커스를 둔 연출을 할 것을 추천한다. 알고보니 모든 것이 악마의 장난이었고, 히어로가 멋지게 지옥행 보이스피싱 사기를 치는 악마를 소탕한다는 스토리면 흥행도 가능해 보인다. 그 이상의 깊이를 스토리에 담아내려고 들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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