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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트비용 논란: 잘 만나는 게 먼저다
    인생 이야기 2021. 11. 2. 13:20

    영화 <타이타닉>

     

    어린 시절 영화 <타이타닉>을 보면서 느낀 진짜 사랑

     

    ‘아, 저렇게 배가 침몰할 때 기꺼이 대신 물에 빠져죽을 수 있는 여자를 만나는 게 진짜 사랑이구나.’

     

     

    사춘기 시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처음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더랬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죽어가면서도 행복했다. 남자의 목숨값을 대신해 살아남은 여자는 평생 다른 남자를 마음에 들이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둘 다 죽고 없어진 후에도 둘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완벽한 사랑으로 남았다. 가령, 어찌어찌 둘이 모두 살아남아서 침몰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PTSD)를 얻고, 그래서 남자는 술을 마시고 여자는 불면증과 우울증 약을 먹다가 가끔은 개처럼 싸우고 결국 싸우다 지쳐 바람을 피워 헤어지는 흔한 스토리보다는 아주 많이 무한대로 더 완벽한 사랑이다.

     

     

    여자는 자신을 대신해서 죽기로 한 남자의 뜻에 순종했다. 페미였다면 ‘평등’을 내세워서 제비뽑기로 누가 죽을지 선택했어야 했을 것이다. 만약 남자가 “넌 꼭 살아야 해. 내 몫까지. 이렇게 예쁜 널 죽게 놔두고 나만 살면 그건 남자도 아니야”라고 했다면 ‘여혐’으로 간주해서 여성부에 신고했을 것이다. 반면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요즘 이대남들은 거꾸로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남녀평등이라면서 왜 남자가 대신 죽어야 하나요? 저 여자는 데이트 비용도 한 번 부담하지 않던 여자란 말입니다. 분명 나 죽으면 저 여자는 잠깐 비련의 여주인공 행세를 하다가 금세 다른 남자들 만나 신나게 야스하고 다닐 게 뻔한데 내가 미쳤다고 대신 죽습니까? 누구 좋으라고!”, 라고. 여자들이 ‘순종’이라는 덕목을 거부하게 되자 남자들은 ‘희생’이라는 덕목을 거부하게 되었다. 그 결과 불신과 갈등만이 흘러넘치게 되었다.

     

     

    남녀의 서로 다른 이성 선택의 기준

    여자가 남자를 볼 때 ‘능력’, ‘지능’, ‘사회적 지위’ 등을 보는 이유는 ‘믿고 따라도 될 남자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남자가 가정의 ‘팀장’이라는 걸 염두해서 그 역할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남자인지 평가해보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적어도 ‘나보다는 키가 크고, 나보다는 능력있고, 나보다는 똑똑하고, 나보다는 정직하고, 나보다는 성실한’ 남자를 원하는 것이다. 여자가 ‘팀장’이 되어서 남자를 리드할 생각이라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선택할 때 그런 기준을 갖지 않는다. 덜 똑똑하고, 덜 능력있고, 작고 약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남자는 ‘끝까지 나만을 믿고 사랑하고 따라주는 여자’면 된다. 그럼 기꺼이 인생을, 목숨을 바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런 남자라면 여자와 아이들을 배신하지도 않고 굶기지도 않는다. ‘가부장적 독재자’가 되어 여자의 의견을 모두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여자의 의견을 다른 누구의 의견보다 귀기울여 듣는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리더로서 결단을 내린다. <타이타닉>에서 남자가 여자에게 “혹시 내가 너 대신 죽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당신 의견대로 할게. 결정 못 내리겠으면 공정하게 동전 던지자.”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게 ‘여성 존중’처럼 보이는가?

     

     

    기본적으로 항상 남자 경찰들이 치안을 보장해주고, 남자 군인들이 다른 나라의 남자 군인들로부터 국경을 지켜준다는 것을 ‘당연한 기본값’으로 깔고 논리를 전개하는 것을 옳지 않다. 그리고는 평생 집에 강도강간범이 들 일도 없고, 배가 침몰할 일도, 교통사고가 날 일도 없으며, 집에 불이 나서 천장이 무너져내리는 일 따위도 절대로 없다고 가정한다. 남자들이 깔아준 도로 위를 남자들이 만들어낸 차를 타고 달리다가 남자들이 지은 건물로 들어가서는 남자들이 만들어서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남자 목수가 만든 소파에 앉아 왜 여자는 리드하면 안 되냐고 따진다. 유리천정따위 다 깨부수겠다며. 여자가 리드해도 된다. 자기보다 어리고 약하고 덜 똑똑하고 능력 낮은 남자 ‘팀원’을 데려다가 결혼해 살면서 잘 리드해도 된다. 아무도 안 말린다. (부모가 제정신이라면 부모 정도는 말리겠지. 그렇게 살면 결국 사람 꼴이 아니게 된다고.)

     

     

    제대로 된 짝을 만나면 데이트비용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문제로 불거질 일이 없다. 여자는 남자에게 순종하겠다는 자세를, 남자는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있으면 돈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마음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당장 먹을 것, 볼 것, 즐길 것이 상대방이라는 사람을 얻는 일보다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상대가 데이트를 위해 쓸데없이 과한 지출을 하면 마치 내 돈이 낭비된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라고 느낄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를 그린다면 벌써부터 한 살림으로 합친듯한 입장에서 모든 지출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떤 사람의 5년 후의 모습을 예측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워서 떡 먹는 편안한 시절이 찾아왔다가도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치기도 한다. 5년 후, 10년 후에 어떤 사람이 어떤 상황 하에 있을지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알거지가 되었을 수도 있고, 암에 걸렸을 수도 있고, 돈은 많은데 감옥에 가있거나, 돈이 너무 많아져서 딴 살림을 차렸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결혼을 결정하는 연애에 있어 당장의 데이트비용을 누가 내느냐에 따라 기부니가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 부디 늦기 전에 정신들 차리기 바란다.

     

     

    이해관계를 초월하지 못하면 사랑 아냐

    사랑에는 이해관계라는 개념이 없다. 사랑이 없는 관계에서는 ‘내가 조금 손해다’라고 느껴지는 지점이 균형점이다. 상대방도 똑같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균형점에 있는 동업관계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화산속 마그마처럼 품고 있다. 뭐만 하면 섭섭하다. 둘다 내가 손해봐준다고 느끼고 있는데 안 그러면 이상한 일이다. 이해관계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사랑은 결국 동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게 되면 내 것은 곧 상대방의 것이 된다. 더이상 내 것이 아니니 손해인지 이득인지 측정할 필요도, 측정할 수도 없게 된다. 측정이 명확하게 될수록 내 것과 네 것이 명확하게 갈려있다는 뜻이고, 그건 사랑이 없다는 뜻이다. 물질에서부터 이득과 손해를 따지는데 참 잘도 목숨까지 희생하겠다. 참 잘도 배신을 안 하겠다. 생명보험 들어 놓고 침몰하는 배 갑판 밖으로 떠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남자든 여자든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야 하고, 그보다 먼저 내가 사랑이 뭔 줄 아는 제대로 된 인간이 되어야 한다. 데이트 비용때문에 신경전 벌이는 관계, 이해득실 따지는 사랑엔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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