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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두순, 정인이 양부모, 그리고 우리
    시사 이야기 2021. 9. 14. 07:45

     

     

     

    “나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

     

     

     

    조두순이 젊어서부터 자주 하던 말이라고 한다. 찢어지게 가난한 가정에서 4형제의 막내로 태어난 그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 그가 10살때 사망했고 어머니는 중풍 환자였다. 고아나 다름없이 된 그는 초등학교 6학년때 학업을 그만두고 극장과 다방 등을 전전하며 자랐다. 

     

     

     

    그가 처음 저지른, 아니 붙잡힌 범죄는 고등학생 나이때 자전거를 훔친 일이었고, 그로부터 2년 뒤 또래들을 협박해 돈을 갈취한 일로 소년원에서 1년 6개월의 형을 살게 된다. 

     

     

     

    범죄자들끼리 모여있는 교정시설은 그에게 더한 범죄들만을 가르쳐주었을 뿐이었다. 소년원 출소 후에는 봉제공장 여공을 강간치상해서 3년형을 받는다. 출소 후 동거녀를 폭행해서 다시 8개월의 형을 살았고, 풀려난 뒤 술에 취한 상태로 첫번째 살인을 저지른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온 일로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데 술자리에서 동석자가 ‘노태우, 전두환 만세’를 외쳤다는 이유로 폭행끝에 죽게 만든 것이었다. 그러나 술에 취해 심신미약이었다는 이유로 2년형을 받았다. 

     

     

     

    그 후로도 그는 술을 마시고 폭력을 휘두르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살인을 저지른지 13년만인 2008년, 국민 모두가 아는 그 잔인한 아동 성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함께 생활했던 재소자는 조두순이 감방 안에서 음란행위를 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거리를 전전하던 소년이 몇 번의 절도행위를 거쳐 교정시설에서 범죄자들과 친목을 쌓으면서 더 큰 범죄를 배웠다. 그러는 와중에 얼마전 화제가 되었던 아동 포르노 영상업자 손정우나 N번방 조주빈 같은 사람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접했을 것이고, 술김에 영상으로 봐오던 것을 재현했을 것이다. 

     

     

     

    조두순이 가장 무거운 벌을 받아 마땅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사법부는 조두순에게 범죄의 동기를 심어준 아동포르노 업자들에게 매우 관대하다. 그뿐 아니다. 부모잃은 가난한 초등학교 소년의 인생에 우리 사회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가 돌이킬 수 없는 문제를 일으키기 전까지는. 

     

     

     

    조두순에게 분노하는 국민들 중에서 자신의 아이가 부모잃은 빈민가 소년과 함께 놀도록 놔둘 사람이 있을까. 참혹한 처지의 아이들이 세상의 무관심 속에 그들대로 모여서 세상에 대한 복수를 계획한들 그게 이상한 일일까. 이런 말을 들으면 자신의 양심을 보호하기 위해 대뜸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럼 국가가 제도를 잘 만들어서 보호했으면 되는 거 아니냐.”

     

     

     

    틀렸다. 불행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앙심과 복수심을 심어주는 주된 이유는 가난이 아니다. 세상의 업신여김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평범한 중산층 부모들, 특히 옆동네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면 데모부터 하고 아파트 출입문을 봉쇄하는 부모들이 제2의 조두순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짜리 조두순을 내 자식처럼 신경써주는 이웃 어른이 몇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 부유한 사람은 부유해서 항상 다들 바쁘다. 그래서 없었을 것이다. 

     

     

     

    아동 성범죄를 조장하는 손정우의 웹사이트와 조주빈의 텔레그램에는 의사, 교수, 법조인, 기업가, 정치인 등의 회원이 많았다. 그래서 이용자들의 신상은 결국 단 한 명도 밝혀지지 않았고 운영자 역할을 한 어린 청년들만 처벌을 받았다. 지금도 제 2의 조두순은 ‘난 잃을 게 없고 세상 무서울 것도 없다’라고 되뇌이며 어디선가 아동 포르노물을 시청하고 있을 것이다.   

     

     

     

    정인이 문제도 그렇다. 이것이 과연 ‘입양제도’의 문제인가? 생활 수준 중산층 이상의 한 부부가 돈을 노리고 입양을 했고 아이를 죽였다. 생계형이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정인이 양부모가 입양에 실패했던들, 제2의 고유정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생명보험 사기를 위한 살인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먹고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정인이 양부모는 왜 돈이 그렇게나 필요했을까? 소설네트워크에 주변인들이 올리는 음식을 먹고, 여행을 가고, 외모를 관리해서 셀카를 올리고, 명품 자랑을 해야 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적어도 차곡차곡 모아서 노후를 대비하기 위함은 아니었다고 보인다. 그런 그들이 친자식인들 학대 없이 키웠을까. 그리고 국가에서 ‘단속(?)’을 강화하고 부모의 체벌을 처벌한다고 해서 이런 종류의 문제가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모든 원인이 사회 병리적인 물질/체면/외모/쾌락추구 풍조에 있는데 말이다. 

     

     

     

    자식을 때리는 것만이 학대가 아니다. 조국, 정경심 부부가 아이들을 키우는 방식도 학대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진로를 밀어붙이는 것도 모자라 표창장까지 위조해줘가며 자녀를 공장의 금형 프레스물처럼 만들어왔다. 그게 학대가 아니라면 대체 무얼까. 

     

     

     

    큰돈을 들여 자녀를 유학보내는 일, 한국말도 서툰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스포츠나 예술 등 각종 과외활동까지 어려서부터 사교육을 시키는 게 과연 자녀사랑인가. 그게 어떻게 자녀 사랑인가, 자기들 욕심이지.

     

     

     

    그렇게 애지중지 자신의 아바타를 키워나가는 한편,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은 근처에도 오지 못하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사람들은 마일드한 사이코패스 증상을 가지고 있다. 정인이 양부모가 추구하는 ‘자기애’를 실현하고도 모자라서 후대를 이용해서까지 나르시시즘의 영토를 확장하면서도, 스스로는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테니 말이다.  

     

     

     

    내 자식만 잘 되면 돼.

     

     

     

    남의 자식이 나와 무슨 상관.

     

     

     

    내 가족만 아니면 돼.

     

     

     

    나만 아니면 돼.

     

     

     

    이런 자세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이 올린 SNS 사진에 박탈감을 느껴 처지를 비관하고 세상에 앙심을 가져버린 이웃들의 범죄에 강력한 처벌을 하라며 소리를 질러댄다. 기이한 광경이다. SNS에 자랑질을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문제는 좀 더 깊고 정신적이다. 사람의 말, 행동, 글, 사진 등에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가득차 있는 것들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표면적인 것보다 그렇게 ‘안보이게 묻어나는 것들’에 더 민감하다. 적어도 무의식적으로는 그렇다. 내가 세상에 내어놓는 말과 행동은 어떤 물결을 퍼뜨리고 있는가, 라는 물음은 그래서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명확하게 칼로 무 자르듯 너와 나의 세상으로 나눌 수 없다. 가느다란 실로 모두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한 사람의 잘못만으로 비극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사회 지도층이 회비를 내서 운영하는 아동포르노 사이트를 보고 세상에 복수심을 품은 판자촌의 누군가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 책임은 모두에게 있다. 내가 ‘돈이 최고다’라는 생각을 한 번 할 때마다 그 물결은 건너 건너 퍼져나가고, ‘낙오자들’의 세상에 대한 앙심은 안 보이는 곳에서 자라난다. 모두가 서로 얽혀있는 하나의 덩어리라는 것을 알고 보면, 우리는 매일 욕심이란 족쇄를 차고 자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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