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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광주, 그날의 진실은 무엇인가.
    시사 이야기 2022. 5. 18. 20:40
     
     
     
     
    A는 B가 가만있는 자기를 때렸다고 한다.
    B는 A가 먼저 칼로 위협했다고 한다.
     
    양측이 제시하는 증거 중에는 가짜도 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진짜도 각각 있다. A와 B는 모두 억울하고, 기가 차고, 화가 난다. 세상 사람들은 A의 편도 있고 B의 편도 있다. 자연히 양쪽으로 뭉쳐서 싸우기 시작한다. 세상이 어느 편의 손을 들어줘도 억울한 사람들이 생긴다. 이럴 경우 감정적으로 흥분상태인 양측이 놓치는 정답지는 ‘양쪽 모두 옳을 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제3자의 개입’에서 찾아야 한다.
     
    만약 제3자가 A로 위장하고 B를 때린 뒤, 다시 B로 위장하고 A를 때렸다면? A로 위장하고 B의 가족들을 죽이고, B로 위장한 뒤 A의 가족들을 죽였다면? 그리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마침 길을 지나치던 사람인 척, 정의의 심판관인 척 슬쩍 나타난다면? 애초부터 A와 B를 갈라서 싸우도록 만듦으로써 이득을 취하기 위한 일이었다면? A와 B가 모두 피해를 당한 것이 확실하고, A도 B도 결백을 주장한다면, 그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답은 ‘제3자의 농간’일 가능성이 높다.
     
    5.18 사태 당시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광주 시민은 분명히 존재한다. 반대편에는 버스에 깔려 죽고 총에 맞아 죽은 군경이 존재한다. 누군가 제3자가 국군 군복으로 위장하고 양쪽에다 신나게 총질을 하고 다녔을 경우를 배제하면 안 된다. 한국군 군복은 북한군도 입고, 심지어 중동지역 테러단체도 입는다.
     
    사실 이런 갈라치기 방식은 미국의 CIA 등 서방의 정보기관에서 애용하는 작업방식이다. 전세계의 굵직한 민중혁명이나 폭동, 내전은 대부분 자생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제3자가 중간에서 벌인 농간으로 인해 발발했다. 프랑스 시민 혁명이 그랬고, 가까운 일본의 개화기를 둘러싼 내전도 그랬고(예수회), 중국의 국공내전에서도 그랬고(당시 미국은 마오쩌둥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했다), 아랍, 이집트, 아프리카, 우크라이나, 동유럽의 혁명에서도 그랬다. 유독 한국만 예외일 리는 없다.
     
    5.18 유공자 선정 과정에 비리가 있다는 고발이 많은 걸로 아는데, 우리 나라의 정치와 행정 수준으로 볼 때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아니, 오히려 비리가 하나도 없다면 그게 더 놀랄 일일 것이다. 비리가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면 수사를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5.18 사태 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죽음이 무시당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청년들인 국군이 대한민국 광주의 시민들에게 무차별 사격을 했다고 쉽게 단정해서도 안 된다. 5.18 주제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이 홍콩, 캄보디아를 비롯 여러 나라의 ‘민중혁명’ 시위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쓰여진다는 점만 보더라도 모종의 국제 네트워크가 배경에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가져야 한다. 국제정치와 역사를 알면 자연히 하게 되는 의심이다.
     
    그래서 5.18을 두고 국민이 둘로 갈려서 악다구니를 하는 것은 굉장히 바보같은 짓이다. 제3자—그것이 북한이든, 미국이든, 어디든—개입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흩어져 있는 진실의 파편들을 드라이하게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 모든 갈등에 기생충처럼 붙어서 이득을 취하는 외세와 그 현지 쁘락치들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이익 본 자가 범인이라는 단순한 이치는 틀린 적이 별로 없다. 5.18 사태 이후 현재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누가 가장 금전적, 정치적 이득을 보았나? 세월호 사건으로는? IMF사태로는? 그리고, 코로나 판데믹으로는?
     
    5.18로 한바탕 또 국민들을 반으로 갈라서 휘휘 저어주고 있는데, 과연 진짜로 그게 요즘의 우리가 논쟁해야 할 일일까? 이제 며칠 내로 유럽에서 WHO에 전세계의 방역통제권을 부여하기 위한 절차가 시작된다. 그러고 나면 윤석열이 ‘국제공조’와 ‘과학방역’에 착수할 것이다. 빌 게이츠와 안철수의 언동을 보면 언제쯤 다음 판데믹이 닥칠지, 얼마나 더 심각한 판데믹일 지도 알고 있는 듯 보인다.
     
    자유는 이미 사라지고 그 자리엔 자유의 유령 정도만 남았다. 호주의 비접자들은 입출국이 오래전에 막혔고 나머지 세상도 별 차이는 없다. 일부 국가, 식당, 카페, 마트만 갈 수 있으면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건 자유의 유령에 불과하다. 자유의 유령을 붙들고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면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는 상황 속에, 짐승처럼 주사를 맞고 특정 태그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살처분될 미래가 코앞에 와 있다. 다시 만난 세계, 신세계가 문턱을 밟고 서있다.
     
    그렇다고 자유를 위해 길거리에 나가 싸우라는 게 아니다. 어차피 아무리 해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물질적인 자유를 완전히 빼앗긴 상황에서 영혼을 지킬 수 있느냐의 문제만이 남았다. 사람으로 죽을 지, 짐승으로 살아갈 지의 선택만이 남았다. 한 명이라도 더 사람이 되게 도울 수 있느냐 하는 것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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