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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들
    성경 이야기 2022. 4. 3. 20:44
     
     
     
     
    소위 ‘기독교인’들 중에서 간혹 이렇게 '선과 악을 분별하지 말라'고 설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기독교 커뮤니티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악영향을 끼친다. 온라인에 떠도는 이 글도 그중 하나다. 
     
     
     
     
    <정죄가 없는 세상을 만나다.>
    오늘은 내 생일이다. 힘들게 새벽기도 갔다왔는데, 미역국도 없고 아내는 계속 잔다. 어제 밤에 분명 내가 미역국 필요없다고 해 놓고도 괜히 심술이 난다. 애들은 알아서 학교로 가고 아내는 계속 잔다.
    끊임없이 내 속에서 아내에 대한 판단과 정죄가 올라온다. 괴롭다.
    나는 절대 얘기 안 하면서 오히려 집안일을 한다. 선을 행한다. 겉은 선을 행하면서 속은 악을 행하는데, 그 선은 위선이다.
    끓임없이 나를 선으로 보고 상대를 악으로 보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아, 내 존재가 선악과이구나!
    나는 선하다고 하면서 상대를 악하다고 하는데, 그 선과 악은 똑같은 것이었다. 둘 다 생명이 없는 것이다. 차라리 겉과 속이 같게 악한 마음을 악하게 드러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아내에 대한 정죄가 사라졌다. 나에 대한 정죄도 사라졌다. 선악과는 떠나고 온전하다 하시는 은혜가 임했다.
    내 속의 선악과의 존재가 드러나고 탄로나자 생명이 임했다. 만족이 임했다. 안식이 임했다.
    모든 사람은 악으로 살든지 선으로 살게 된다.
    내가 내 화를 참지 못할 때는 악으로 산다.
    내가 참을 때는 참는다는 내 선으로 산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상대를 정죄한다.
    악으로 살던 선으로 살던 그곳에는 생명이 없다.
    선악과를 먹은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은 이 둘로 나눠진다. 좋은 것 나쁜 것, 옳은 것 틀린 것.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모든 것을 나의 기준으로 항상 둘로 나누게 되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은 내가 십자가에서 끝나고(즉 항상 나를 기준으로 좋고 싫고를 나누고 맞다 틀리다 판단하는 것이 끝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실 때 비로서 나는 참된 만족, 안식을 누리게 된다.
    물론 살아가면서 또 선악과를 조금씩 주워 먹고 싸우는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날마다 복음의 말씀으로 씻겨지고 날마다 더욱 장성하게 되며, 날마다 더욱 분명히 보게 될 줄을 믿는다!
    - 전철곤 목사 -
     

     

     

     

    언뜻 들으면 그럴듯한 이 멍멍이 소리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한 구절도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 한 구절 한 구절이 정확하게 성경 내용에 배치된다. 한 문장씩 단락별로 살펴보자.
     
    1. “아내가 생일상을 차리지 않고 잠만 자서 아내가 악하다는 정죄의 마음이 들었다.”
    성경 어디에 남편 생일상을 거르면 악하다는 말이 있나? 오히려 엄밀히 따져보면 인간이 스스로의 생일을 기념하는 행위가 비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2. “아내를 정죄하는 마음이 계속 올라와서 괴로운 나머지 선행을 했다. 그 선행은 집안일이다.”
    아내한테 삐져서 성질나는 게 어떻게 정죄인가? 그냥 성격이 못난 거지. 그리고 집안일이 선행이라는 내용이 성경에 있나? 그건 그냥 당연히 해야 하는 일 아닌가? 남의 집안일도 아니고 자기 집안일을 하는 게 어째서 선행인가? 전철곤경에 나와있나 불경에 나와있나?
     
    3. “끓임없이 나를 선으로 보고 상대를 악으로 보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아, 내 존재가 선악과이구나!”
    나를 선으로 보고 남을 악으로 보는 존재가 선악과인가? 아니다. 성경의 선악과는 먹게 될 경우 ‘선과 악을 알게 되는’ 열매다. 창조주와 천사들도 모두 선과 악을 구분하는 능력이 있다. 선악을 아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선악과는 7천년 창조 계획의 일환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창세 이전에 계획된 것이다. (따라서 선악과를 먹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않고 신의 뜻에 역행하는 짓이다. 마치 인간이 죄를 지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끔찍하게 돌아가셨으니 십자가를 물리자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4. “나는 선하다고 하면서 상대를 악하다고 하는데, 그 선과 악은 똑같은 것이었다. 둘 다 생명이 없는 것이다. 차라리 겉과 속이 같게 악한 마음을 악하게 드러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아내에 대한 정죄가 사라졌다. 나에 대한 정죄도 사라졌다. 선악과는 떠나고 온전하다 하시는 은혜가 임했다.내 속의 선악과의 존재가 드러나고 탄로나자 생명이 임했다. 만족이 임했다. 안식이 임했다.”
    점입가경. 굉장히 심각한 부분이다. 본인이 악이 아닌 것에 화내고 선행이 아닌 것을 선으로 여겨서 심경이 복잡했을 뿐인데 거기서 선과 악이 결국 똑같다는 결론을 도출해낸다. 선과 악 둘 다에 생명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만족과 안식이 임했단다. 이건 불교, 힌두교의 가르침과 정확하게 일치되는 대목이다. 성철스님이 조선일보에 기고한 내용을 살펴보자.
    “착한생각 악한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하게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모로 섬기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 됩니다.”
    부처와 악마, 선과 악은 똑같은 것. 내용이 일맥상통한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불교에서 유명한 절간마다 있는 문 이름이 ‘불이문’이다.
     
     
    둘이 아니다, 즉 둘이 다르지 않다라는 말이다. 부처와 악마가 다르지 않고 선과 악이 다르지 않으니 우리는 오로지 선악 구분을 떠남으로써 깨달음을 얻어 안락한 상태가 되자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영지주의 기독교’도 똑같다. 영지주의 기독교에서는 ‘선악과를 떠나서 생명나무에 참여하라. 그러려면 선과 악을 분별하지 말아야 한다. 선과 악은 똑같다’라고 가르친다.
     
    5. “모든 사람은 악으로 살든지 선으로 살게 된다.
    내가 내 화를 참지 못할 때는 악으로 산다.
    내가 참을 때는 참는다는 내 선으로 산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상대를 정죄한다.
    악으로 살던 선으로 살던 그곳에는 생명이 없다.”
    이 부분도 굉장히 심각하다. 뒤로 갈수록 심각해진다. 사람이 뭘로 사나?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으며 말씀(만나, 예수)으로 살아간다. 그것이 아니면 거짓의 아비 마귀의 욕망을 행하며 살아간다. 화를 참는다고 곧 선이 아니며 화를 낸다고 꼭 악도 아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화를 못 참으면 악이고 화를 참으면 선인데 그러므로 선이나 악이나 모두 생명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화를 내는 것이 무조건 악이라는 불교적 가르침이 옅보인다.
     
    6. “선악과를 먹은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은 이 둘로 나눠진다. 좋은 것 나쁜 것, 옳은 것 틀린 것.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모든 것을 나의 기준으로 항상 둘로 나누게 되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은 내가 십자가에서 끝나고(즉 항상 나를 기준으로 좋고 싫고를 나누고 맞다 틀리다 판단하는 것이 끝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실 때 비로서 나는 참된 만족, 안식을 누리게 된다.“
     
    앞서 설명한 ‘불이문’ 즉 둘이 아니다라는 가르침의 반복이다. 또 이 사람은 ‘선악과를 먹은 나’를 ‘항상 나를 기준으로 좋고 싫고를 나누고 맞다 틀리다 판단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성경의 선악과는 나를 기준으로 하는 상대적인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가 아니다. 절대적인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고 그래서 위선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성경에서 성도들에게 선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라고 하고, 악은 모양도 피하라, 형제의 죄를 경고하지 않으면 그 피가 너에게 있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과 완전히 배치된다. 심지어 중보기도를 하더라도 일단 중보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선을 행하는지 악을 행하는지 판단이 서야 기도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철곤이라는 사람은 ‘판단 자체를 하지 말고 은혜 안에 거하라’는 가르침을 설파하고 있다. 참된 만족은 선악을 초월할 때 느끼는 게 아니라 성령의 파워로 모든 생각들과 상상들을 그리스도 앞에 무릎꿇려 복종시키는 데서, 즉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서 온다. (고린도후서 10장)
     
    7. "물론 살아가면서 또 선악과를 조금씩 주워 먹고 싸우는 일들이 일어나겠지만 날마다 복음의 말씀으로 씻겨지고 날마다 더욱 장성하게 되며, 날마다 더욱 분명히 보게 될 줄을 믿는다!"
    선악과 사건은 일회성 사건이다. 더 주워 먹을 수도 없고 안 먹은 것으로 돌릴 수도 없다. 역설적으로, 선악과를 먹지 않은 존재는 성경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복음의 말씀은 씻어내기 위한 무엇이 아니다. 먹기 위한 것, 채우기 위한 것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온다고, 이 사람은 마음에 복음이 없어서 성경에 없는 소리만 잔뜩 나온다. 씻는 것은 십자가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침례다. 말씀은 예수님의 살이고 먹는 것이다.
     

     

    성경은 단순히 읽는다고 알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모를 수도 있고, 누구라도 잘못은 할 수 있다. 뉘우치고 배우면 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내 느낌이 옳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성경의 모든 구절을 비교해서 배치됨이 없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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