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야기
소금과 베이킹소다와 곰팡이 (feat. 예수님)
스카이트리
2023. 3. 20. 20:34
이 글은 픽션에 기반한 창작물이며 현실의 팩트와는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이전 글들에서 소개했던 다양한 곰팡이 제거 민간요법들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고 눈에 띄는 효과를 보던 중 한 가지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의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내적 갈등 비슷한 것이었다.
왜 베이킹 소다일까? 나는 성경에서 베이킹 소다를 본 적이 없는데. 왜 소금물로는 곰팡이가 안 사라지는데 베이킹 소다에는 꼼짝 없이 죽을까. 성경이 맞다면 '빛'이나 '소금'으로 곰팡이가 죽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심지어 성경에도 없는 베이킹 소다로 설령 곰팡이가 죽는다고 해도 그게 무슨 유익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이 미묘한 내면의 갈등 혹은 양심의 문제를 그냥 넘기지 않기 위해 고민과 연구를 거듭했고, 그 결과를 오늘 독자님들과 나누고자 한다. 왜 소금물에는 안 죽는 곰팡이가 베이킹 소다에는 죽는지, 곰팡이를 죽이는 성경적인 방법은 없는지에 대해서.
우선 소금과 베이킹 소다의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금은 테이블 솔트(인공소금)와 씨 솔트(바다소금)이다. 인공소금은 주로 암염을 여러 공정을 거쳐 만들고 바다소금은 공장에서 끓여서 만드는 방법과 햇볕에 말리는 천일염이 있다. 이 두 가지 소금의 성분을 보면,
일단 테이블 쏠트는 거의 99% 소듐 클로라이드(염화나트륨)이다.
바다 소금도 거의 다 소듐 클로라이드이다.
최근 들어 건강에 좋다고 입소문이 퍼져 유행하는 히말라야 암염을 보면,
신기하게도 테이블 쏠트와 성분이 거의 같다. 99% 염화나트륨이다. 미네랄의 포함 정도가 자연에서 그대로 채집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혹시 테이블 쏠트를 다시 결정화시킨 게 아닐까 의심될 정도다.
나는 저염식이 각종 현대 질병의 원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이후로 소금을 따로 섭취해왔다. 여지껏 두세 가지 소금을 사용해봤는데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지는 걸 느껴왔다. 하지만 베이킹소다를 사용했을 때의 극적인 곰팡이 제거 효과는 전혀 체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몸이 가벼워지고, 단 것을 먹고 싶은 충동이 사라지고, 쉐딩 증상이 사라지거나 완화되고, 가습기를 사용했을 때 호흡이 편해지는 등의 효과는 소금으로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성경은 소금을 매우 좋은 것, 중요한 것으로 여러 차례 언급하는 반면 베이킹소다는 전혀 언급이 없다. 성경에 소금이 어떻게 언급되고 있는지 잠깐 함께 알아보자.
우리가 소금에 대한 성경 구절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구절은 아마 대부분 이 신약 구절일 것이다.
"너희는 땅의 소금이로되 만일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리요? 그 뒤에는 그것이 아무 쓸모없으므로 버려져서 사람들의 발밑에 밟힐 뿐이니라."
- 마태복음 5:13 -
유명한 '빛과 소금' 구절이다. 음식의 맛을 내고 부패를 막는 데 필수인 소금처럼 세상에 대하여 그런 존재가 되라는 말씀이다.
다음으로 많이 떠올리는 구절은 비슷해 보이는 마가복음의 이 구절일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제 짠맛을 잃으면 너희가 무엇으로 그것의 맛을 내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 마가복음 9:50 -
그리고 일반 교회에서 자주 언급되지 않는 소금에 대한 몇몇 구절은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맛없는 것을 소금도 없이 먹을 수 있겠느냐? 달걀의 흰자위가 무슨 맛이 있겠느냐?"
- 욥기 6:6 -
"너는 네 음식 헌물의 모든 봉헌물에 소금을 칠 것이니라. 너는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 네 음식 헌물에서 빠지지 않게 할지니 너는 네 모든 헌물과 함께 소금을 드릴지니라."
- 레위기 2:13 -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예루살렘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네 태생과 출생의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족속이며 네 어머니는 헷 족속이었노라. 네 출생으로 말하건대 네가 태어나던 날에 사람들이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고 너를 물로 씻어 부드럽게 하지 아니하며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고 또 너를 포대기에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 에스겔 16:3-4 -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드리는 거룩한 것들의 모든 거제 헌물은 내가 너와 또 너와 함께하는 네 아들딸들에게 주되 영원한 법규에 따라 주었나니 그것은 주 앞에서 너와 및 너와 함께하는 네 씨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 민수기 18:19 -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 데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은 태어나면 탯줄을 자르고 물로 씻은 뒤 소금을 뿌린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 또는 '소금 언약'이라고까지 표현되는 그것은 '영원한 법규'이다. 소금은 하나님의 언약, 영원함과 직결되는 존재인 것이다.
이 하나님의 '영원의 소금 언약'은 다윗 왕과 그 아들들에게 상속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의 왕권을 영원토록 다윗에게 즉 그와 그의 아들들에게 주신 줄을 너희가 마땅히 알아야 하지 아니하겠느냐?"
- 역대하 13:5 -
이처럼 '중요하고 좋은 것' 심지어 '영원한 것'으로까지 여겨지는 소금. 그런데 소금이 좋은 것이라고 했지 벌레나 곰팡이를 죽인다는 말은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분명히 있다. 위에서 보았던 마가복음 구절을 맥락 안에서 보도록 하자.
"만일 네 손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불구가 되어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내버리라. 절뚝거리며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곧 결코 꺼지지 않을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실족하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 속에 던져지는 것보다 네게 더 나으니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이는 사람마다 불로 절여질 것이요, 희생물마다 소금으로 절여질 것이기 때문이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제 짠맛을 잃으면 너희가 무엇으로 그것의 맛을 내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 마가복음 9:43-50 -
빨간 글씨 부분을 킹 제임스 성경 영어 원문으로 보면 이렇다.
"Where their worm dieth not, and the fire is not quenched. For every one shall be salted with fire, and every sacrifice shall be salted with salt. Salt is good:"
'Salted with fire'를 '불로 절여지다'라고 번역을 했는데 의미 전달이 조금 불분명할 수 있다. 영어 원문으로 읽으면 불과 소금이 거의 같은 존재인 듯한 뉘앙스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빨간 글씨 중 가장 첫번째 단어인 '거기서는'에 주목해야 한다. 거기서는 소금으로 아무리 절이고 불로 태워도 '벌레'가 죽지 않는다. 그렇다면 지금의 세상인 '여기서'는 죽는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여기서 '벌레'는 모든 해충과 박테리아와 곰팡이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곰팡이는 굳이 따지자면 '동물(벌레)'에 속한다고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었다.)
그리고 마가복음 9장은 '산상수훈'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이다. 핵심 중의 핵심 같은 중요한 구절들이라는 얘기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어떤 산에서 있었을까?
갈릴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Mount Beatitudes(참행복의 산)이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벌레와 소금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걸으신 곳도,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았던 곳도 바로 갈릴리 호수다. 갈릴리 호수에는 무슨 특별한 게 있을까?
모압과 암몬 족속들을 접하고 있는 '사해'로부터 마치 탯줄처럼 올라온 요단강이 이어진 갈릴리 바다(호수). 나사렛과 가버나움이 인근에 위치해 있고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곳이다. 나는 이 지도가 마치 Dead Sea로부터 '좁은 길'을 통과해 위로 올라오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듯 보인다. 실제로 요단강은 갈릴리 호수의 북쪽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흘러 사해를 이룬다. 사해에서 갈릴리 호수로 좁은 길인 요단강을 통해 가려면 마치 연어처럼 몸이 부숴져라 물길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그럼 사해와 갈릴리 호수는 어떻게 다를까.
해수면보다 430미터나 아래 위치한 사해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고 마실 수 없다. 마그네슘 등 미네랄의 함량이 너무 높아서 일단 매우 쓰다.
하지만 갈릴리 호수는,
이스라엘 지방의 가장 큰 '프레시 워터 레이크(담수호)'다. 바닷물보다도 짜고 써서 마실 수 없는 사해의 물과는 달리 오랫동안 식수원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렇다면 왜 갈릴리 호수는 갈릴리 바다라고 불릴까?
그냥 호수지만 '전통적인 이유로' 갈릴리 바다라고 불린다는 설명.
강과 바다의 가장 큰 차이는 염도다. 그래서 혹시 소금과 갈릴리 바다의 관계는 없을지 찾아보았다.
갈릴리 바다의 물에는 염분이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저 정도 염분은 다른 담수호에도 많다.
비교적 짠 물인 갈릴리 호수.
이 설명은 좀더 흥미롭다. 수천년동안 각종 미네랄이 요단강 상류로부터 흘러들기만 하고 잘 흘러나가지 않아서 (혹은 요단 강이 좁아서 천천히 흘러나가서?) 호수의 물이 증발함에 따라 미네랄들이 결정화가 되었기 때문에 갈릴리의 물은 짜지 않다고 한다. 결정화라...
그렇다면 갈릴리 호수의 바닥에는 수천 년동안 물이 증발하면서 결정화된 소금이 있겠네?
혹시 고대 어딘가의 호수의 바닥에서 소금을 채취한 사례는 없을까?
역사적 Natron(나트론)은 고대 이집트의 말라붙은 호수 바닥에서 채취된 소금이었다. 가정에서 비누와 치약, 물 소독 등에 쓰였고 상처 소독에도 쓰였다. 게다가 '물고기와 고기'를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고대의 살충제였고 가죽을 만들거나 의복의 세탁에도 쓰였다. 이거 완전 소금 얘긴데?
Natron은,
여러가지 소듐(나트륨) 성분이 섞여 있는 일종의 말하자면 소금이다.
Natron은 심지어 몇몇 문화권에서 '영적인 안전'을 증진시켜준다고 믿어졌다. 곰팡이를 제거하면 영적인 안전도가 높아진다.
Natron은 아랍의 토종 소금이라는 언급.
의약용, 요리용, 농사용, 유리 제작시, 심지어 이집트에서 미이라를 만들 때도 쓰였다는 논문도 있다. 미이라를 만든다는 것은 시체에서 곰팡이와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한다는 말과 같다.
소금을 아무리 많이 퍼먹어도 사라지지 않던 몸속의 곰팡이. 그런데 Natron이라는 고대의 소금은 어떻게 복용 등을 통해 영적인 안전까지 높인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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